✸ 本文所有韓文及照片來源:[가을엔 한양도성] 비운의 남산자락…’국치’를 생각하며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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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 18.6km 중 가장 우여곡절이 많은 구간은 남산이다.
남산은 일제가 경복궁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일제가 남산에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한양도성은 잘리고 허물어졌다.
이후 군사정권이 1960년대 반공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는 자유센터(현 남산 제이그랜하우스)를 지으면서 도성 일부를 헐어냈다. 도성을 허는 과정에서 나온 돌로 자유센터 건물 담장을 쌓기까지 했다.
한양도성 남산 구간은 봄·가을로 꽃과 단풍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지만, 서울의 ‘다크 투어(dark tour·비극적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것)’ 중심지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 한양도성을 깔고 앉은 ‘조선신궁’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곳곳에 신사가 들어섰다. 1945년 8월 해방 당시 조선 전역의 신사는 무려 1천141개에 이르렀다.
그중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이 가장 컸다. 일제가 조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역점을 둔 곳이다.
일제는 1919년 남산 회현 자락에 부지 66만1천160㎡를 확보하고 1920년 신사 건립을 시작했다. 완공까지 5년이 걸렸다.
조선신궁은 일본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모신 일본 신사의 총본부로, 1천141개 신사 중 ‘우두머리’였다.
일제가 숭례문에서 조선신궁까지 올라가는 참배로를 닦으면서 이 구간의 한양도성은 무참히 헐려 나갔다. 성곽을 부순 뒤 낸 찻길이 지금의 소월길이다.
신사 입구에서 본전이 있는 넓은 터로 연결되는 능선에는 돌계단 384개를 놨다.
돌계단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 나와 유명해 진 뒤 ‘삼순이 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아픈 역사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위세가 당당했던 조선신궁의 역사는 20년 만에 끝이 났다. 일제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튿날 바로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폐쇄 행사를 연 뒤 건물을 스스로 철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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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都城 南大門到南山公園 被壓在朝鮮神宮下的漢陽都城 金三順階梯 #조선신궁 남산 한양도성 남산공원 삼순이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