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壓在朝鮮神宮下漢陽都城(首爾城墎)的悲傷故事,南山公園的金三順階梯不只是韓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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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文所有韓文及照片來源:[가을엔 한양도성] 비운의 남산자락…’국치’를 생각하며 걷다

✸ 中文翻譯及補充:我自己。(若有錯誤,請告訴我!謝謝!

✅ 詳細原文:https://reurl.cc/kXGX3L

조선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 18.6km 중 가장 우여곡절이 많은 구간은 남산이다.

남산은 일제가 경복궁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일제가 남산에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한양도성은 잘리고 허물어졌다.

이후 군사정권이 1960년대 반공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는 자유센터(현 남산 제이그랜하우스)를 지으면서 도성 일부를 헐어냈다. 도성을 허는 과정에서 나온 돌로 자유센터 건물 담장을 쌓기까지 했다.

한양도성 남산 구간은 봄·가을로 꽃과 단풍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지만, 서울의 ‘다크 투어(dark tour·비극적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것)’ 중심지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包圍朝鮮首都漢陽的18.6km都城中,最曲折坎坷的就是南山了。在日帝將總督府和總督官邸移到景福宮之前,南山是殖民統治的中心。日帝在比汝夷島面積超過2倍大的南山建造朝鮮神宮,並毀壞了漢陽都城。之後軍事政權在1960年代,建造了在反共活動中有核心作用的自由中心(現為南山J-GRAN HOUSE),同時都城的一部份被毀壞。都城在被拆毀的過程中所拆除下來的石瑰被自由中心用來做為建物的圍牆。漢陽都城南山區段在春天和秋天適合散步和欣賞櫻花楓葉,它也是首爾 “黑暗之旅”(dark tour)在市中心中很有意義的一個地方。(黑暗之旅:透過悲劇歷史現場取得教訓的景點或地方)

◇ 한양도성을 깔고 앉은 ‘조선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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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한반도 곳곳에 신사가 들어섰다. 1945년 8월 해방 당시 조선 전역의 신사는 무려 1천141개에 이르렀다.

그중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이 가장 컸다. 일제가 조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역점을 둔 곳이다.

일제는 1919년 남산 회현 자락에 부지 66만1천160㎡를 확보하고 1920년 신사 건립을 시작했다. 완공까지 5년이 걸렸다.

조선신궁은 일본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모신 일본 신사의 총본부로, 1천141개 신사 중 ‘우두머리’였다.

일제가 숭례문에서 조선신궁까지 올라가는 참배로를 닦으면서 이 구간의 한양도성은 무참히 헐려 나갔다. 성곽을 부순 뒤 낸 찻길이 지금의 소월길이다.

신사 입구에서 본전이 있는 넓은 터로 연결되는 능선에는 돌계단 384개를 놨다.

돌계단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 나와 유명해 진 뒤 ‘삼순이 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아픈 역사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위세가 당당했던 조선신궁의 역사는 20년 만에 끝이 났다. 일제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튿날 바로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폐쇄 행사를 연 뒤 건물을 스스로 철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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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坐)在漢陽都城上的 “朝鮮神宮”
日帝強占時期,韓半島各地都有神社。1945年8月解放當時,朝鮮全國神社數量達到1,141個。其中以南山 “朝鮮神宮” 最大,日帝把這裡(南山)做為朝鮮殖民統治象徵的重要地點。日帝於1919年南山會賢山腳下取得661,160㎡的土地,於1920年開始建造神社,花了5年的時間完工。朝鮮神宮祀奉創建日本列島的天照大神和天皇的日本神社總部,是1,141座之首。日帝把崇禮門(南大門)到朝鮮神宮一路上來的參拜路舖平的同時,這段的朝鮮神宮被殘忍的破壞了。城墎被破壞後所產生的汽車道就是現在的素月路(소월길)。
神社入口的本宮有個寬敞的空地,連接到山脊上有384個石階梯。石階梯的痕跡現在還在,因為在韓劇 “我叫金三順” (2005)中出現而有名,被叫做 “三順階梯“,只是被隱藏了悲傷的歷史。朝鮮神宮的輝煌歷史20年就結束了,日帝在1945年8月15日光復的隔天,馬上舉行 “昇神式” 的閉幕儀式,並自行拆除。

✅ 詳細原文:https://reurl.cc/kXGX3L

漢陽都城 南大門到南山公園 被壓在朝鮮神宮下的漢陽都城 金三順階梯 #조선신궁 남산 한양도성 남산공원 삼순이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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